이 곳은 장편소설 "달빛(月光)"의 작가 안유형(본명 안경희 安景姬)의 홈페이지입니다.

Wednesday, February 10, 2010

외국인과 빈대떡


며칠 전이었습니다.

우연히 예전에 알던 미국 부인들을 두 명 만났습니다.
오랫만에 보아서 반가운 나머지 그들에게 제가 인삿말로 '내일 점심이나 같이 하자.'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중 한 명이 "한국 음식?" 하고 반색을 하며 좋아했습니다. 저는 '아차, 그게 아니라 가까운 레스토랑에서 가벼운 샐러드나 간단한 점심을 같이하자라는 의미로 말했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저 혼자 생각했습니다.
"한국 음식?"하며 좋아했던 부인은 제가 취미로 여러 해 동안 도자기를 배우러 다녔는데 두 번이나 그녀의 클래스에서 배웠던 도자기 선생님이었습니다. 다른 부인도 역시 그 때에 다른 클래스를 가르치던 도자기 선생님이었구요.
(다행히 "달빛"에는 도자기 이야기가 한 번도 언급이 되지 않아서 저는 "달빛"을 무척 좋아합니다. ^^)

문득 냉장고를 열어보니 마침 빈대떡을 준비해 놓은 재료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은 새로 보지 않고 집에 있는 재료만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가벼운 청소를 하고 두 부인들이 도자기를 빚는 이들이기 때문에 제가 예전에 만들었던 도자기 작품들을 박스에서 몇 개 꺼내다가 잘 보이도록 진열해 두고, 밥솥의 버튼을 누르고 빈대떡 부칠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려는데 아, 저런...
온 천지에 마치 "달빛"의 한 장면처럼 눈이 펑펑 내리면서 보도 블락 위에 흰눈이 수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다른 때라면 아름다운 백색 설경에 도취되어 카메라를 들이 댔겠지만 그날 만은 달랐습니다. 두 부인들이 오면 차를 주차할 곳의 눈을 치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삽을 들고 한바탕 눈을 치우고 난 뒤 그녀들의 작업실로 향했습니다. 군데 군데 진흙을 묻히며 작업을 하던 그녀들에게 조그만 한식당을 발견했다고 말하고 제 차를 뒤따라 오라고 했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미끄러운 길을 따라 저의 집에 온 부인들에게 식탁 위에 전기 프라이팬을 올려 놓고 즉석에서 빈대떡을 부쳐 주며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두 부인들은 갓 부친 뜨거운 빈대떡을 양념 간장에 찍어 먹으며 너무 맛있다고 하면서 저에게 레시피를 달라고 했습니다.
레시피를 적는 일은 재료를 준비하여 음식을 만들면서 그 양을 적어야 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지만 적어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두어 시간동안 즐겁게 환담을 나눈 부인들은 작업실로 돌아가고 저는 뒷정리를 하면서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사실 녹두 빈대떡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입니다.
깐 녹두를 물에 불려 약간의 물과 함께 푸드 프로세서로 조금 거칠게 갈은 뒤, 갈은 돼지고기에 갖은 양념을 하고 신 김치를 꼭 짜서 송송 썰어 참기름에 살짝 무치고 당근, 호박, 파 등은 채 썰고 양파는 굵게 다져서 양념된 고기와 야채들에 부침가루나 밀가루를 골고루 뿌려 버무린 후, 갈은 녹두와 계란을 으깨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고루 섞어 뜨거운 프라이팬에 중불로 식용유를 두르고 노릇노릇하게 지져 냅니다.
양념장으로는 간장에 통깨, 고춧가루, 참기름, 다진 파, 다진 양파(아주 조금)를 넣었습니다. (기호에 따라 다진 고추도 좋겠지요. ^^)

원래 빈대떡의 재료에는 숙주 나물이며 고사리 또는 잘게 찢은 도라지 등도 들어 가지만 저는 그냥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를 사용해서 편하게 음식을 만듭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빈대떡에 대한 두 부인들의 좋은 반응을 보고, 만약에 독자님들께서 한식을 준비해서 외국인들을 접대할 자리가 생기신다면 겨울철에는 즉석에서 부쳐 먹는 빈대떡을 꼭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마 파전이라든지 다른 전들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오늘 아침에 제가 사는 곳에는 눈이 12인치가 넘게 쌓였습니다.
옷을 단단히 챙겨입고 밖에 나가 눈을 치우고 들어와 차를 마시면서 몇 자 적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건강 하세요! ^^

(레시피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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